58
지옥에 있는 모두는
자기와 세상을 사랑하는 데서 오는 악과 그와 관련된 거짓 안에 있다
All Who Are in Hell Are
in Evils and Related Falsities Derived from Loves of Self and the World
558b
자기 사랑이 이웃 사랑에 반대된다는 것은 두 사랑의 근원과 본질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의 이웃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한다. 그가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를 위한 이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웃 사랑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자기와 결탁하는 사람 모두에게 이르며, 자기와 사랑으로 결탁된 정도에 반비례하여 줄어든다. 또 그는 자기 집단 외의 사람은 전혀 중요시 하지 않고, 그 집단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리 지혜롭고, 공정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해도 원수로 여긴다. 그러나 이웃을 향한 영적 사랑은 주님과 함께 시작, 주님을 중심으로 사랑과 신앙으로 주님과 결합된 모든 사람을 향해 뻗어나가되 그들의 사랑과 신앙의 질에 따라 뻗어나간다.주287 그렇다면 분명, 자기에게서 출발한 이웃 사랑은 주님으로부터 출발하는 이웃 사랑에 반대되는 것이다. 전자는 악에서 나온다. 그것은 사람 본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는 선에서 나온다. 선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즉 자기 본성에서 나오는 이웃 사랑은 육신적이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이웃 사랑은 천국적이다. 한마디로, 자기 사랑이 우세한 사람에게는 자기 사랑이 머리가 되고, 천국적 사랑은 발이 된다. 그는 천국적 사랑 위에 올라서 있고, 만일 그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짓밟아 버린다.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이 머리를 아래로 하여 지옥을 향하고, 발은 위로 천국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48항). That the love of self is the opposite of love to the neighbor can be seen from the origin and essence of both. The love of the neighbor of one who is in the love of self begins with oneself, for he claims that everyone is neighbor to himself; and it goes forth from him as its center to all who make one with him, diminishing in accordance with the degree of their conjunction with him by love. All outside of this circle are regarded as of no account; and those who are opposed to those in the circle and to their evils are accounted as enemies, whatever their character may be, however wise, upright, honest, or just. But spiritual love to the neighbor begins with the Lord, and goes forth from him as its center to all who are conjoined to him by love and faith, going forth in accordance with the quality of their love and faith.287 Evidently, then, the love of the neighbor that has its beginning in man is the opposite of the love to the neighbor that has its beginning in the Lord; and the former proceeds from evil because it proceeds from what is man’s own, while the latter proceeds from good because it proceeds from the Lord, who is good itself. Evidently, also, the love of the neighbor that proceeds from man and from what is his own is corporeal, while the love to the neighbor that proceeds from the Lord is heavenly. In a word, in the man in whom love of self prevails, that love constitutes the head, and heavenly love constitutes the feet. On that love he stands; and if it does not serve him he tramples it under foot. This is the cause of the appearance that those who are cast down into hell fall with the head downward toward hell, and with the feet upward toward heaven (see above, n. 548).
주287.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이웃이며, 선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AC.6704). Those who do not know what it is to love the neighbor imagine every man to be a neighbor, and that good is to be done to everyone who is in need of help (n. 6704). 그들은 또한 모두가 스스로에게 이웃이며, 따라서 이웃 사랑은 자기 사랑으로 시작한다고 믿는다 (AC.6933). They also believe that everyone is neighbor to himself, and thus that love to the neighbor begins with self (n. 6933).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즉 자기애가 우세하여 그걸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시작을 자신들을 가지고 한다 (AC.6710). Those who love themselves above all things, that is, with whom self-love prevails, also make their love to the neighbor begin with themselves (n. 6710). 모든 사람이 어떤 식으로 자기 자신의 이웃이 되는가, 그 설명 (AC.6933–6938) In what manner everyone is neighbor to himself, explained (n. 6933–6938).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면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여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시작을 주님으로 한다. 주님은 가장 사랑받으셔야 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AC.6706, 6711, 6819, 6824). But those who are Christians and who love God above all things make their love to the neighbor begin with the Lord, because He is to be loved above all things (n. 6706, 6711, 6819, 6824). 이웃의 차이들은 주님의 선의 차이들만큼이나 많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 각 사람의 상태의 질에 따라 차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중함의 문제다 (AC.6707, 6709, 6711, 6818). The distinctions of neighbor are as many as the distinctions of good from the Lord, and there should be distinction in doing good to everyone in accordance with the quality of the person’s state, and this is a matter of Christian prudence (n. 6707, 6709, 6711, 6818). 이들 차이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며, 그래서 이런 이유로 고대인들은, 그들은 이웃의 의미를 알았는데, 체어리티 활동을 클래스로 분류, 그 수를 좀 줄이고, 거기에 적당한 이름들을 붙였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이 어떤 면에서 이웃인지를 알았고, 어떤 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신중하게 선을 행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AC.2417, 6628, 6705, 7259–7262). These distinctions are innumerable, and for this reason the ancients, who knew what is meant by the neighbor, reduced the exercises of charity into classes, which they denoted by suitable names, and from this knew in what respect everyone was a neighbor, and in what manner good was to be done to everyone with prudence (n. 2417, 6628, 6705, 7259–7262). 고대 교회의 교리는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의 교리였고, 여기서 그들은 지혜를 얻었다 (AC.2417, 2385, 3419, 3420, 4844, 6628). The doctrine in the ancient churches was the doctrine of charity toward the neighbor, and from this they had wisdom (n. 2417, 2385, 3419, 3420, 4844, 6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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