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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삶의 즐거움은 사후 그것이 상응하는 것으로 바뀐다
The Delights of Every One’s Life Are Changed after Death into Things That Corresp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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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응의 지식이 없으면, 사람의 자연적 즐거움이 사후에 영적 즐거움으로 바뀌게 되는 것과 무엇이 영적 즐거움인가를 알 수 없다. 상응의 지식은 전체적으로 자연적인 것은 그에 상응하는 영적인 것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부적으로는 그 상응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러므로 이 지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사랑이 앞에서 말한 모든 사랑이 연관되어 있는 보편적 주된 사랑 중 어느 것에 연관되어 있는지만 안다면, 죽은 뒤에 자기가 어떤 상태에 놓일 것인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주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이 자기 본성을 사랑하고, 자기의 악을 선이라 여기며,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의 악을 지지하는 허위를 진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들이 원한다면, 그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사랑에 완전히 빠져 있어 지혜로운 사람의 가르침을 모두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것도 불가능하다. Only from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can it be known what spiritual delights everyone’s natural delights are changed into after death, and what kind of delights they are. In general, this knowledge teaches that nothing natural can exist without something spiritual corresponding to it. In particular it teaches what it is that corresponds, and what kind of a thing it is. Therefore, anyone that has this knowledge can ascertain and know what his own state after death will be, if he only knows what his love is, and what its relation is to the universally ruling loves spoken of above, to which all loves have relation. But it is impossible for those who are in the love of self to know what their ruling love is, because they love what is their own, and call their evils goods; and the falsities that they incline to and by which they confirm their evils they call truths. And yet if they were willing they might know it from others who are wise, and who see what they themselves do not see. This, however, is impossible with those who are so enticed by the love of self that they spurn all teaching of the wise.
[2] 반면에 천국적 사랑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기의 타고난 악을 마주하면 진리에 비추어 그 악을 볼 수 있다. 진리는 악을 명백히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선에서 비롯된 진리로 인해서는 누구나 악과 그 허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악으로 인해서는 아무도 선과 진리를 볼 수 없다. 악에서 생긴 허위들은 어둠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악에서 생긴 허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눈먼 상태에 있고, 빛 속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야행성 새들처럼 빛을 피하는 것이다.주273 그러나 선에서 비롯된 진리는 빛이며, 빛에 상응하기 때문에(126–134항), 선에서 비롯된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볼 수 있고, 눈이 열려 있어 빛과 어둠에 속한 것을 분간하는 것이다. On the other hand, those who are in heavenly love accept instruction, and as soon as they are brought into the evils into which they were born, they see them from truths, for truths make evils manifest. From truth which is from good anyone can see evil and its falsity; but from evil none can see what is good and true; and for the reason that falsities of evil are darkness and correspond to darkness; consequently those that are in falsities from evil are like the blind, not seeing the things that are in light, but shunning them instead like birds of night.273 But as truths from good are light, and correspond to light (see above, n. 126–134), so those that are in truths from good have sight and open eyes, and discern the things that pertain to light and shade.
[3] 이것도 내가 경험으로 확인한 사실이다. 천국의 천사들은 그들 속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악과 그릇된 생각을 보고 느낀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은 중간 영계에서 지옥과 연결되어 있는 영들 속에 있는 악과 그릇된 생각도 보고 느낀다. 그러나 그 영들 자신은 자기의 악과 허위를 보지 못한다. 그런 영들은 자기를 위해서 행하는 것 이외의 천국적 사랑, 양심, 정직과 공정의 선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상의 내용을 밝힌 목적은 사람이 자신을 검토하여 자기의 즐거움을 근거로 자기의 사랑을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상응의 원리를 아는 한, 자신의 사후의 삶이 어떤 상태일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This, too, has been proved to me by experience. The angels in heaven both see and perceive the evils and falsities that sometimes arise in themselves, also the evils and falsities in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 that are connected with the hells, although the spirits themselves are unable to see their own evils and falsities. Such spirits have no comprehension of the good of heavenly love, of conscience, of honesty and justice, except such as is done for the sake of self; neither what it is to be led by the Lord. They say that such things do not exist, and thus are of no account. All this has been said to the intent that man may examine himself and may recognize his love by his delights; and thus so far as he can make it out from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may know the state of his life after death.
주273. 상응으로부터 말씀에 나오는 ‘어둠’은 거짓을, ‘짙은 어둠’은 악한 어둠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AC.1839, 1860, 7688, 7711). From correspondence “darkness” in the Word signifies falsities, and “thick darkness” the falsities of evil (n. 1839, 1860, 7688, 7711). 악한 자들에게는 천국의 빛이 짙은 어둠으로 보인다 (AC.1861, 6832, 8197). To the evil the light of heaven is thick darkness (n. 1861, 6832, 8197). 지옥에 있는 자들은 어둠 속에 있다는 말을 듣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악에 속한 거짓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예들 (AC.3340, 4418, 4531) Those that are in the hells are said to be in darkness because they are in falsities of evil; of such (n. 3340, 4418, 4531). 말씀에서 ‘소경’은 거짓 가운데 있고, 가르침 받기를 원치 않는 자들을 맔한다 (AC.2383, 6990). In the Word “the blind” signify those that are in falsities and are not willing to be taught (n. 2383, 6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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