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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

HH.299,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HH.291-302)

33

천국과 인류의 결합

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Human Race

 

299

나는 허락하심에 따라 사람의 불안, 마음의 슬픔, 그리고 우울함이라 불리는 내적 비감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영들 중에는 사후 첫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아직 지옥과 결합되지 않은 영들이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중간 영계를 다룰 때 설명하겠다. 이런 영들은 위장에 남아 불결해진 음식물과 같은, 소화되지 않은 유해한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이들은 그런 것에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것 속으로 들어와 사람과 함께 한다. 들어와서 그들은 자기들 특유의 악한 애정에서 비롯된 말을 자기들끼리 주고받는데, 이때 이들의 말에 들어있는 애정이 사람에게 흘러든다. 이때 그 흘러든 애정이 그 사람의 애정에 상반되면 사람에게 슬픔과 우울함과 불안이 일어난다. 반면 그 애정이 동질이면, 즐거움과 활기가 생긴다. 이런 영들은 위장 근처에, 그들의 애정에 따라 위장의 왼쪽이나 오른쪽, 아래나 위, 더 가까이 더 멀리, 다양하게 나타난다. 나는 많은 경험을 통해 마음의 불안이 이런 원인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고 확증하게 되었다. 나는 이런 영들을 보았고, 그들의 말을 들었으며, 그들에 의해 불안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고, 그들과 대화도 해보았다. 그들이 멀어져 가면 불안도 사라졌고, 그들이 돌아오면 불안도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불안의 증가와 감소가 이런 영들의 접근과 물러감에 따르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이 사실로 인해 양심이 전혀 없어서 양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왜 양심의 고통을 위장 탓으로 돌리는지 알 수 있었다.주208 I have also been permitted to learn the source of human anxiety, grief of mind, and interior sadness, which is called melancholy. There are spirits not as yet in conjunction with hell, because they are in their first state; these will be described hereafter when treating of the world of spirits. Such spirits love things undigested and pernicious, such as pertain to food becoming foul in the stomach; consequently they are present with man in such things because they find delight in them; and they talk there with one another from their own evil affection. The affection that is in their speech flows in from this source into man; and when this affection is the opposite of man’s affection there arises in him sadness and melancholy anxiety; but when it agrees with it, it becomes in him gladness and cheerfulness. These spirits appear near to the stomach, some to the left and some to the right of it, and some beneath and some above, also nearer and more remote, thus variously in accordance with their affections. That this is the source of anxiety of mind has been shown and proved to me by much experience. I have seen these spirits, I have heard them, I have felt the anxieties arising from them, and I have talked with them; when they have been driven away the anxiety ceased; when they returned the anxiety returned; and I have noted the increase and decrease of it according to their approach and removal. From this it has been made clear to me why some who do not know what conscience is, because they have no conscience, ascribe its pangs to the stomach.208

 

 

208. 양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양심이 무엇인지 모른다 (AC.7490, 9121). Those who have no conscience do not know what conscience is (n. 7490, 9121). 양심이 무엇인지를 듣고는 양심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AC.7217). There are some who laugh at conscience when they hear what it is (n. 7217). 어떤 이들은 양심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그건 신체적인 이유나 세상적인 이유로 일어나는, 뭔가 슬픔과 애도와 관련된 자연적인 거라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그건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교에서 경험하는 것들이라고 믿는다 (AC.206, 831, 950; [참된 기독교 665번 글 참조]). Some believe that conscience is nothing; some that it is something natural that is sad and mournful, arising either from causes in the body or from causes in the world; some that it is something that the common people get from their religion (n. 206, 831, 950; [see True Christian Religion, n. 665]). 참된 양심, 가짜 양심, 그리고 거짓된 양심이 있다 (AC.1033). There is true conscience, spurious conscience, and false conscience (n. 1033). 양심의 고통은 불의, 불성실하거나 어떤 악한 일로 인한 마음의 불안인데, 사람은 이걸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웃의 선을 적대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AC.7217). Pain of conscience is an anxiety of mind on account of what is unjust, insincere, or in any respect evil, which man believes to be against God and against the good of the neighbor (n. 7217).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가운데 있는 사람들한테는 양심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양심이 없다 (AC.831, 965, 2380, 7490). Those have conscience who are in love to God and in charity toward the neighbor, but those who are not so have no conscience (n. 831, 965, 2380, 7490).